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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3화 황가의 마법능력!

  • 03. 황가의 마법능력!
  • “전하! 뒷마당에 말 대기했습니다.”
  • 황태자의 친구이자 비서인 라다힐이 황태자의 집무실로 들어와 아뢰었다.
  • 황태자는 출입문 안쪽에 서 있다 라다힐을 맞았다. 황태자는 문 양옆 화분에서 말라비틀어져 가는 유칼립투스를 걱정스레 바라보고 있었다.
  • “수고했다. 라다힐.”
  • “근위대장 임명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, 어딜 가시려고요? 전하!”
  • “비아테르에게 가서 영지 반환에 대해 알려주려고.”
  • 라다힐이 고개를 갸웃했다. 서서히 진행하면 될 일을 갑자기 서두르는 것 같았으니까.
  • “영지 반환을 서두르시는 이유는 뭡니까? 전하!”
  • “내가 생각이 바뀌었거든.”
  • “어떻게요?”
  • “비아테르가 근위대장이 된 이상, 펠르랭 가문과 케사르 형님이 그녀를 주시할 거야. 영지도 반환되는지 눈여겨 감시하겠지.”
  • 황태자가 곧장 덧붙였다.
  • “빨리 돌려주고 위험에 대비하게 하려고.”
  • “외면하면서 보호하고 계셨던 전략을 바꾸시겠다는 겁니까?”
  • “그래! 비아테르에게 영지를 돌려주면 저들의 선택은 두 가지뿐이야. 자기들 우군으로 끌어가거나, 제거하거나.”
  • 펠르랭 가와 케사르 황자로 부터 남 모르게 비아테르를 지켜온 황태자였다. 라다힐은 그런 황태자의 노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, 둘도 없는 지지자였다.
  • “잘 생각하셨습니다. 전하! 이제 비아테르도 스스로 방어할 수 있을만큼 성장했으니까요.”
  • 라다힐이 곧장 장난스런 표정으로 덧붙였다.
  • “그렇다고, 오늘부터 막 들이대실 건 아니죠?”
  • "왜, 그럼 안 돼?”
  • 라다힐은 기겁한 표정으로 황태자의 생각에 반기를 들었다.
  • “그동안 비아테르에게 얼마나 차갑게 굴었는지 잊으셨습니까? 갑자기 친한 척하면 놀라서 주먹을 날릴지도 모릅니다. 조심하십시오.”
  • “...!”
  • 라다힐의 말에 황태자도 살짝 걱정이 됐다. 그녀에게 다가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?
  • 그때, 라다힐의 눈에 말라비틀어진 유칼립투스가 들어왔다.
  • “전하! 저거 안 보이십니까? 잠깐 손만 대면 살아나는 걸, 왜 방치하십니까?”
  • “그러게. 나도 이상해. 아무리 어루만져도 살아나질 않아.”
  • “예에? 전하의 치유 능력으로 못 살린다고요? 왜요? 언제부터요?”
  • “오늘 아침부터. 전엔 이런 적이 없었는데...”
  • “혹시, 어제 과음하셨어요?”
  • “아니다.”
  • 라다힐은 주위를 둘러본 뒤, 급격히 소리를 낮춰 속삭였다.
  • “케사르 황자님과 펠르랭 가문이 알면 큰일 아닙니까? 황가의 능력을 잃어버린 황태자라뇨?”
  • “알면, 좋아하겠지!”
  • “좋아하기만 하겠습니까? 당장 황태자 폐위시키자고 들고 일어날 걸요?”
  • “그러니까, 당분간 비밀이다!”
  • “당연하죠. 그게 뭐 어렵습니까?”
  • 순간, 라다힐은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고 황태자에게 물었다.
  • “곧 돌아오겠죠?”
  • 하지만, 황태자는 한숨을 내쉴 뿐 대답하지 못했다. 불안해진 라다힐이 나가는 황태자를 붙잡았다.
  • “안 가시면 안 됩니까? 이렇게 위중한 때에 태자궁을 비워야겠냐고요?”
  • “얼굴 펴라, 라다힐! 네가 그러니까 나까지 불안하잖아!”
  • “그럼, 이 상황에 웃습니까?”
  • 라다힐이 원망을 담아 덧붙였다.
  • “잘 좀 간수하시지!”
  • 은연중에 황태자를 탓하는 라다힐에게 어이가 없어진 황태자가 헛웃음을 토하며 장담했다.
  • “걱정마라, 라다힐! 황태자의 비서가 실업자가 되는 일은 없게 할 테니까!”
  • “정말이시죠? 그 말씀을 들으니, 조금은 위로가 됩니다.”
  • “헛!”
  • 코웃음을 친 황태자가 당부했다.
  • “꼼짝하지 말고 여기 있어. 나 없는 것, 티 안 나게 하라고.”
  • “저야 그러고 싶죠! 이 태자궁에 전하를 감시하는 눈이 한둘입니까? 금세 쫓아갈 테니 잡히지나 마십시오.”
  • “하긴, 나도 기대는 안 했어.”
  • “그게 바로 전하의 장점이죠. 안 될 일은 포기가 빠르시거든요.”
  • 몽트부르 황가의 자손들은 특별한 마법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.
  • 에르니엘 몽트부르 황태자는 ‘치유능력’을 타고났다. 그런데, 어찌 된 영문인지 오늘 아침부터 그 능력이 사라져 버렸다.
  • 황태자는 열 살 때, 황제 내외와 신관이 보는 앞에서 치유 능력을 검증받았다.
  • 그 검증을 통과한 황손만이 차기 황제 계승권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.
  • 황태자의 이복형인 케사르 황자도 검증을 완료했다.
  • 하지만, 케사르의 마법능력은 황태자의 능력이 그렇듯 베일에 쌓여있다.
  • 각자의 능력을 비밀에 부치는 건 몽트부르 황가의 전통이었다.
  • 그래서, 황태자도 황자도 각자의 능력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.
  • ***
  • 제멋대로 헝클어진 붉은 머리칼, 불안을 떨치지 못한 초록 눈동자.
  • 거울 속의 나는 추리하고 얼떨떨해 보였다. 그리고, 내가 아닌 것처럼 낯설었다.
  • 왜 아닐까? 죽었다 살아서 마주한 나인데...
  • '정신 차리자. 비아테르!'
  • 나는 파비앙 랑디 후작의 딸, 비아테르 랑디다.
  • 아버지는 제국의 동쪽 국경을 다스리던 영주셨고, 그 땅의 주인이셨다.
  • 20년 전, 저택에 일어난 원인모를 화재로 돌아가셨지만 화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.
  • 영지는 알 수 없는 이유로 황실의 관리를 받는 땅이 되었다. 내가 상속녀인데도.
  • 고작 다섯 살이던 나는 황도의 외가에서 할아버지와 이모의 새 가족이 되었다.
  • 그 후, 열일곱 살이 되었을 때 나는 황태자의 근위대에 입단했다.
  • 뛰어난 검객이기도 하셨던 아버지의 재능을 충실히 물려받은 나는 일찍 실력을 인정받았다.
  • ‘스물다섯에 근위대장이 된 이유지.’
  • 애마 토토를 타고 태자궁으로 향했다. 근위대장에 임명식에 늦으면 안 되니까.
  • 들판을 지나 큰길로 접어들자, 멀리 태자궁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.
  • 순간, 죽기 직전에 들었던 황태자의 고백이 떠올라 피식 웃어버렸다.
  • 그러나, 가슴 한가운데에 자리한 끔찍한 슬픔에 나는 가슴이 답답해졌다.
  • 에르니엘 황태자와 케사르 황자. 그들이 황위를 두고 벌이는 쟁탈전에 우린 희생양이었으니까.
  • 하지만, 이유를 모르겠다. 우리가 왜 그 싸움의 희생양이 되어야 했는지?
  • 그때, 누군가 태자궁 쪽에서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었다. 근데, 낯이 익어!
  • ‘에르니엘 황태자!’
  • 순식간에 코앞까지 다가온 황태자가 내 앞에서 말을 세웠다.
  • “비아테르! 같이 갈 곳이 있소.”
  • “지금 말입니까? 전하!”
  • “그래. 시간 없으니 말 머리부터 돌리지! 파리 떼에게 잡히진 말자고!”
  • “하오나!”
  •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‘이럇!’ 을 외치고 황태자가 달려나갔다.
  • 거침없이 치고 나가는 그의 모습에 가슴이 설렜다.
  • ‘멋있어!’
  • 황태자의 사소한 행동조차 마음을 두드렸다.
  • 근데, 근위대장 임명식은 어쩌고, 태자궁 반대쪽으로 가는데?
  • 그때, 뒤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한 무리가 쫓아오는 것이 보였다.
  • “드디어 파리 떼 등장인가?”
  • 나도 속도를 올려 황태자의 뒤를 따라 달렸다.
  • 앞서가던 황태자는 갈림길에서 모퉁이 뒤로 사라졌다. 나도 그 길로 접어들었다.
  • “파리 떼를 따돌리기엔 더없이 좋은 길이군.”
  • 황태자를 따라 숲속으로 들어가자, 빽빽한 나무 사이에서, 오두막이 나타났다. 마당 한쪽에 말을 묶은 황태자가, 내게 손을 내밀었다.
  • 잡고 내리라고?
  • 그의 손을 붙잡고 내리자, 그가 약간 노골적으로 나를 응시했다.
  • '그렇게 보지마. 설레잖아.'
  • 나는 수줍음을 감추려고 고개를 돌렸다. 그러자, 황태자가 태연히 물었다.
  • “손은 언제까지 잡고 있을 거지?”
  • “아아...”
  • 후딱 손을 가져왔다. 내가 잡힌 줄 알았는데...
  • 뾰로퉁하게 쳐다보자, 황태자는 야릇한 미소를 몰래 짓고 있었다.
  • 그 미소, 무슨 의미야?
  • 그나저나, 황태자도 지난 생을 기억할까? 물어보자!
  • “전하! 황궁 재판정에서... 그 일...”
  • 기억하세요? 우리 키스도 했는데.
  • 당신은 나를 살리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고요.
  • 말끝을 얼버무렸지만, 곧장 질문의 의도를 파악한 황태자가 즉시 대답했다.
  • “비아테르도 알고 있었나? 그랬군...”
  • 전하도 기억하는구나!
  • 그런데, 황태자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지기 시작했다. 기분이 상한 듯 표정을 찌푸렸다.
  • 설마, 나와의 키스를 후회하는 거야?
  • “비아테르! 그대가 어떻게 생각하든, 플리르 재판장에게 주먹을 날린 건 적절했다 생각하는데!”
  • “재판장을 치셨다고요?”
  • “그렇소! 그 얘기 아니었나?”
  • 아니었어요!
  • 그것보다, 재판장에게 주먹을 날렸다고? 통쾌한 걸!
  • 재판장은 내게 참수형을 선고해 죽이려던 자가 아닌가.
  • 그런 자에게 주먹질이라니?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통쾌해!
  • 그나저나, 우아한 황태자께서 재판장은 왜 때렸데?
  • “재판장과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?”
  • “별것 아니오. 플리르 그 인간은 좀 재수가 없어서...”
  • “네? 풉!”
  •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. 그리고 확신했다. 황태자도 지난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.
  • 황태자의 뒤를 따라 나도 오두막으로 향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