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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2화 근위대장 임명식이 오늘이라고?

  • 02. 근위대장 임명식이 오늘?
  • 나는 분명 내 심장을 찔렀고 죽었다!
  • 할아버지와 이모도 먼저 죽었었지.
  • 그런데, 내가 어떻게 방 침대에서 눈을 뜬 걸까?
  • 그때 거칠게 문을 열어 재낀 이모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들이닥쳤다.
  • “비아테르! 무슨 일이니? 비명 소리가 들렸단다.”
  • “이모?”
  • 멜리아 이모다.
  • 죽은 이모가 어떻게 여기에?
  • 귀신인가?
  • 이모는 걱정스레 일그러진 얼굴로 다그쳤다.
  • “무슨 일인데 그래? 비아테르!”
  • “멜리아 이모?”
  • “그래. 나야.”
  • 분명 죽었던 이모가 앞에서 말을 한다.
  • “비아테르, 왜 그래?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이구나.”
  • ...그러니까요!
  • 이모는 침대 옆으로 성큼 다가선 뒤 내 이마에 손을 올렸다. 섬뜩했지만 피하기엔 늦었다.
  • 근데, 이모 손이 따듯해. 귀신이 아닌가?
  • 나를 포함해 우리 가족 모두는 죽었는데... 어째서, 다시 삶을 살고 있는 거지?
  • 혹시, 우리 돌아온 건가?
  • 다시 돌아왔다고?
  • 그 순간, 생을 되찾은 기쁨과 함께 케사르 황자를 향한 분노가 덮쳐왔다.
  • ‘케사르 황자! 대체 왜 그랬어? 우릴 왜 죽였냐고?’
  • 낭만적이진 않았지만 케사르 황자와 나는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였다. 그에게 죽임을 당할 아무 이유도 없다고.
  • 나와 내 가족은 결코 케사르 황자에게 적대적이지 않았다.
  • 오히려, 이모는 케사르를 좋아했었지. 내 신랑감으로 점찍었을 만큼.
  • 내 앞에서 늘 상냥하게 미소짓던 케사르 황자는 등 뒤에 칼을 숨기고 있었다.
  • 하지만, 전혀 뜻밖의 사실도 알게되었다. 나와 늘 거리를 두었던 황태자가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을.
  • 한숨을 토한 이모가 침대 끝에 앉아 근심가득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.
  • “전 괜찮아요. 이모.”
  • “얼굴은 하나도 안 괜찮아 보이는데?”
  • “정말 괜찮아요.”
  • 근데, 이모는 죽음을 기억할까?
  • “이모는 괜찮으세요?”
  • “응? 내가 왜?”
  • 이모는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 뚱한 표정을 지었다. 그녀는 죽음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분명했다. 그럼, 할아버지는?
  • “할아버지, 어디 계세요?”
  • “아침 일찍 농장에 나가셨어. 소작인들이 오늘 파종을 한다는 구나.”
  • “아아.”
  • 다행이다. 할아버지도 무사하셔.
  • 안도하며 웃자, 이모도 따라 웃다가 ‘놀랐잖아!’ 하는 표정으로 눈을 흘겼다.
  • 그런데, 이모가 불쑥 꺼내든 이름에 나는 치가 떨렸다.
  • “케사르 황자님은 잘 계시지? 네가 어서 그분과 맺어지면 좋겠구나.”
  • “절대 그런 일은 없어요. 절대로요.” 제가 본 게 있거든요.
  • 나와 내 가족을 함정에 빠뜨려 죽인 악당. 절대 용서하지 않겠어!
  • 하지만, 죽음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모는 내 원한도 이해할 수 없으리라.
  • “비아테르! 케사르 황자님이랑 싸웠니?”
  • “싸우긴 요. 그 인간의 진짜 모습을 본 거죠.”
  • “진짜 모습이라니? 설마, 황자님께 숨겨 놓은 여자라도 있었어?”
  • “글쌔요. 그러든지 말든지요.”
  • 이모는 여자 문제만 아니면 괜찮은 듯했다. 케사르 황자에겐 일관되게 우호적이었으니까.
  • "싸운 거 맞네. 하긴, 그러면서 정도 드는 거지."
  • "아니라니까요!"
  • 이모는 오래전부터 케사르 황자를 내 신랑감으로 점찍고 계셨다.
  • 스물아홉 살의 케사르 황자가 내 혼인 상대로 배경과 나이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다.
  • 나와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는 에르니엘 황태자에 대한 반감도 작용했을 것이다.
  • ‘케사르! 이 괴물.’
  • 케사르 황자는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펠르랭 가문의 딸인 릴리안 황비의 아들이다.
  • 그는 황태자보다 한 살 많은 형이지만, 정비인 아메나 황후의 아들인 에르니엘 황태자에게황위 계승권에서 밀렸다.
  • 동생에게 황태자 자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한 케사르는 황위를 포기한 적 없었다. 그의 뒤엔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외가 펠르랭 가문이 버티고 있으니까.
  • 케사르는 그가 마음만 먹으면 황태자로부터 황위를 뺏어올 수 있다고 확신했다.
  • 그들의 탐욕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. 굳이 아니라고 부정하려는 노력도 없었다.
  • 저들의 탐욕을 아는 황제조차도 적극적인 소탕보다는 소극적으로 모른 해 온 이유다. 직접 대적하기엔 부담스런 군사력이니까.
  • 파란 머릿결과 짙은 갈색 눈동자, 우유처럼 뽀얀 피부가 비현실적인 매력을 뿜어내는 케사르 몽트부르 황자.
  • ‘나쁜 자식!’
  • ‘개자식!’
  • 케사르와 에르니엘 황태자는 외모에서 막상막하다. 그들을 능가하는 미모는 제국 내에 없으니까.
  • 우아하면서도 상대를 압도하는 아우라를 뽐내는 황태자는 케사르 조차 겸손하게 만들 정도로 최강 미모의 소유자다.
  • ‘케사르 황자가 신비한 푸른색 장미라면, 에르니엘 황태자는 우아한 크림색 장미랄까?’
  • 나는 이모가 케사르 황자에게 더는 기대하지 않길 바랐다. 그래서, 케사르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.
  • “케사르는 제게 중요한 사람이에요. 절대 제 손에서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요.”
  • “어어... 그래?”
  • 내 표정이 험악했던 탓일까? 이모는 자신의 판단력을 의심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.
  • 그러나 이모도 포기하지 않았다. 곧장 에르니엘 황태자의 뒷담화로 넘어갔으니까.
  • “황태자는 여전히 뾰족하니? 너한텐 곁도 안 주고?”
  • “겉으로야 그러시겠죠. 지금까지 쭉 그래왔으니까요.”
  • “겉으로? 속은 아니란 말이니?”
  • “네.”
  • 나를 향한 에르니엘 황태자의 마음을 알아버린 이상, 이모가 쏟아내는 비난에 더 이상 동조할 순 없다.
  • “황태자와 무슨 일 있었니? 비아테르!"
  • “제가 그동안 전하를 오해했어요.”
  • “오해? 혹시, 황태자가 네게 꼬리 쳤니? 그래서 홀랑 넘어간 거야?”
  • 이모가 정색하며 되물었다.
  • “이제와서 사람 보는 눈이라도 좀 생겼대?”
  • “...!”
  • 철벽 같은 이모의 신념에 반박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. 그녀가 쌓은 비호감의 장벽이 너무 높았다.
  • “황태자는 무시해. 넌 케사르 황자님만 믿으면 돼.”
  • “황태자 전하!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예요.”
  • “비아테르, 너 정말 이상하구나? 전엔 황태자 욕도 잘만 하더니 오늘은 딴사람 같아.”
  • “제가 언제 전하를 욕해요? 이모가 할 때 조금 거든 것뿐이죠.”
  • “그게 한 거야.”
  • 이모의 오해는 차차 시간을 두고 풀어야 할 것 같았다. 서두르면 역효과만 날 것 같으니까.
  • 하긴, 그동안 황태자가 나를 멀리했으니 이모가 싫어하는 것도 당연하지.
  • 그런데, 죽음을 앞둔 내게 황태자가 사랑을 고백했다. 그는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.
  • 그는 케사르 황자와 펠르랭 가문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서 일부러 멀리 했던 것이다.
  • 그것도 모르고 난 그가 날 싫어한다고 생각했지.
  • ‘그래서, 몰래 바라보기만 한건데!’
  • “비아테르! 어서 준비하렴. 근위대장 임명식에 늦으면 안 되잖아!”
  • “임명식이 오늘이에요?”
  • “그래. 하물며 네가 주인공이야! 기억 안 나니?”
  • “그게...”
  • 임명식 날로 돌아왔구나!
  • 임명식은 죽기 한 달 반 정도, 전이었는데...
  • “황태자께서 근위대 훈련장에서 제게 임명장을 주셨어요. 그게 오늘이라고요?”
  • “그래! 근데, 너 어젯밤에 잠이 부족했니? 문법이 엉망이구나!”
  • 근위대장이 되고, 한 달 후, 황태자를 따라 동쪽 국경으로 시찰을 떠났었다.
  • 케사르 황자도 동행한 시찰이었다. 열흘 동안의 시찰을 끝내고 황도로 돌아 온 그날 밤, 할아버지와 이모가 살해당했다.
  • 황태자가 범인이라 생각한 나는 복수를 하기 위해 태자궁으로 쳐들어갔다.
  • 하지만, 복수는커녕 검술로 당할 자 없는 황태자에게 내가 붙잡혀 버렸지.
  • 그러부터 5일 후, 황태자는 재판정에서 내게 자결을 명령했고, 그렇게 나는 죽었지.
  • 대략 45일 전으로 돌아왔구나!
  • “비아테르! 기특하게 선인장을 살려 놨구나? 죽은 줄 알고 버리려던 건데.”
  • 이모가, 침대 옆 선인장을 보고 흥분해서 한 말이었다.
  • 허억! 아까까지만 해도 죽어있던 선인장이 어떻게 금세 초록빛으로 살아난 거지?
  • 무슨 일이야?