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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9화 이혼 합의서

  • “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? 고심우를 잘 살피라고 했잖아!”
  • 상입현은 아무 말도 없이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이효를 보고 표정이 굳었다.
  • “왜 그래? 얼굴색이 말이 아닌데? 원수라도 만난 거야?”
  • 이효의 눈빛은 흐릿했다.
  • “여화연을 만났어.”
  • 상입현이 자세히 물어보기도 전에 고심우가 울며불며 쫄래쫄래 쫓아와 그의 팔을 꽉 안았다.
  • “입현 씨, 왜 날 버리고 간 거야? 난 자기 약혼녀야, 나 혼자 쥬얼리 샵에서 얼마나 난처했는지 알아?”
  • “징징거리지 마, 짜증 나니까.”
  • 상입현은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.
  • 고심우는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.
  • “이젠 날 신경 쓰지도 않는 거야?”
  • 상입현은 눈썹을 찌푸렸다.
  • “내가 언제 널 신경 쓴다고 했어?”
  • 고심우는 그의 말을 믿지 않고 반 협박 반 애교를 시전했다.
  • “날 개의치 않는다면 왜 나랑 약혼하는 거야? 자기가 계속 그런다면 이 약혼식도…”
  • “하지 마.”
  • “뭐?”
  • “약혼식을 안 하겠다 이 말이야.”
  • 상입현은 인자하게 웃고 있었지만, 그가 뱉은 말은 냉정하기 그지없었다.
  • “난 집에 잠자코 있는 아내한테 장가가고 싶은 거지 딸 같은 아내를 키우고 싶은 게 아니야.”
  • 고심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상입현은 바라봤다. 그녀는 상입현이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란 걸 깨닫고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어 울며 도망치듯이 떠났다.
  • “젠장, 결혼 한 번 하기 참 어렵네.”
  • 상입현은 이효가 부러웠다.
  • “그나저나 네 아내는 참 괜찮은 사람이야, 네 술에 약 탄 걸 보면 꾀가 좀 많긴 하지만 그것도 한 번뿐이잖아. 그것만 빼면 정말 완벽해, 이쁘지 그리고 점잖지.”
  • 이효는 표정만 엄숙할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.
  • 잠시 지나서야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.
  • “입현아, 나 또 당한 거 같아.”
  • “누구한테?”
  • “여화연.”
  • 그는 이빨 사이로 겨우겨우 이 세 글자를 내뱉었다.
  • 상입현은 뒤늦게 깨닫고 그한테 반문했다.
  • “아까 여화연을 만났다고 했지?”
  • 이효는 무거운 입술을 겨우겨우 열었다.
  • “맞아, 그뿐만 아니라 연회를 개최한 그날 밤 내 방에 있던 여자도 여화연이었어.”
  • 상입현은 잠시 멈칫하더니 또 물었다.
  • “너 설마 네 아내를 못 알아본 거야?”
  • “3년 동안 그 사람 얼굴을 한 번밖에 못 봤어, 게다가 약 탄 술을 마셨는데 기억할 리가 있겠냐?”
  • “결혼 후 아내를 탐구해 볼 생각도 안 했어?”
  • 상입현은 모든 여자를 “깊게” 탐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.
  • 이효의 목소리는 흐린 날씨처럼 음침했다.
  • “그 사람이 내 술에 탄 약 맛을 탐구해야 하나, 그럼?”
  • “하긴 그래…”
  • “여화연이 이혼하고 싶대.”
  • 이효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. 그의 눈동자에서 차가운 한기가 뿜어져 나왔다.
  • “꿈도 꾸지 마.”
  • “너도 이혼하고 싶어 했잖아.”
  • 상입현은 이효의 마음을 종잡을 수 없었다.
  • “그 사람이 결혼을 원해서 결혼했어, 지금 이혼하고 싶다고 해서 이혼해주면 내가 너무 순종하는 거잖아.”
  • 그는 어딘가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.
  • ‘여화연은 아직 내 아내니까 이혼 문제는 일단 부부지간의 의무를 다 수행하고 해결해야지.’
  • 적어도 그는 아직 그녀의 육체를 무척 탐냈다.
  • 강연연의 아파트에 돌아온 여화연은 머리가 아파 관자놀이를 주무르고 있었다. 그녀는 자기가 곧 궁지에 몰릴 것 같았다.
  • ‘이효 그 사람이 날 이렇게 쉽게 놔줄 리가 없어. ’
  • 평소 호들갑을 떨던 강연연도 여화연이 행여 상처받을까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.
  • 여화연은 한숨을 뱉으며 책상 위 아직 개봉하지 않은 배달 서류를 쓱 잡았다.
  • 폴더를 열자 다섯 글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: 이혼 합의서
  • 강연연도 참지 못하고 호들갑을 떨었다.
  • “이혼 합의서?!”
  • “그 사람도 이혼하고 싶었구나.”
  • 여화연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. 삶의 희망을 되찾은 듯싶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