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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11화 이효가 왔다

  • 여계천은 서류를 들어 살펴보고 일시 낯빛이 싹 변했다. 그리고 서류를 책상에 있는 힘껏 던지며 말했다.
  • “여화연, 넌 제구실도 못 하냐? 겨우겨우 이씨 가문에 시집갔는데 남자의 마음은커녕 남자 몸도 정복 못 하냐?!”
  • 원우는 말리려고 나섰지만 여계천의 손바닥에 밀려났다.
  • “얼마나 많은 사람이 네가 이씨 집안에서 쫓겨나길 바라는지 알아? 적어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분발해야 할 것 아니냐!”
  • 여계천은 화가 많이 났다.
  • “하지만 난 분발하기 싫어.”
  • 여화연은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. 애당초 이효한테 시집간 것도 여씨 그룹의 명예를 위한 일이었다.
  • 어느 누가 강x범한테 시집가길 원할까? 어느 누가 자기를 강x한 사람한테 시집가길 원할까?
  • “어디서 말대꾸야!”
  • 여계천은 격노해 손바닥으로 책상을 세게 내리쳤다. 그 바람에 책상 전체가 같이 흔들렸다.
  • “이혼은 절대 안 돼!”
  • 여화연은 주먹을 불끈 쥐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.
  • “내가 말했다면 안 되겠지만 이 이혼 합의서는 이효가 준 거야.”
  • 그러자 여아진이 언니한테 의견을 냈다.
  • “형부한테 찾아가지도 못하냐? 언니랑 형부랑 결혼 3년 차잖아. 그리고 이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 언니를 좋아하잖아. 정 안되면 둘째 도련님한테 가서 울며 불쌍한 모습을 보이면 이 일도 얼렁뚱땅 넘길 수 있을 거야.”
  • 당시 여화연이 이씨 가문으로 시집가고 혼인 신고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씨 집안의 둘째 도련님이 그녀한테 한눈에 반했기 때문이었다.
  • “하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아.”
  • 여화연의 목소리는 얇고 가늘었지만 아주 호쾌했다.
  • “안 그러면 네 앞날은 어떡할 거야?”
  • “앞날은 나중에 알 수 있어.”
  • 여계천은 큰 소리로 호통쳤다.
  • “그렇게 되면 넌 한번 갔다 온 사람이 되는 거야. 이혼한다고 해도 강씨 그놈이 널 다시 받아주지 않을 거야. 강씨 집안에서 널 들여오지도 못하게 할 거니까 쓸데없는 생각은 집어치우고 그냥 이씨 가문의 며느리로 살아.”
  • 여화연은 이혼 얘기를 꺼내면 가족들이 난리 친다는 걸 진즉 짐작하고 있었다.
  • 하지만 아버지가 이렇게 거북한 말을 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.
  • 여씨 그룹을 위해 이효와 결혼하기로 마음을 먹은 후 그녀는 3년 동안 강일한과 연락을 끊고 살았다.
  • ‘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길래 부모님은 날 아진이처럼 조건 없이 사랑하고 지지해주지 않는 거지?’
  • 그녀는 또 잠시 머뭇거리며 마음을 진정시켰다.
  • “아빠, 이혼 합의서는 이효가 제기한 거야. 이 일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.”
  • 여계천은 그녀의 말에 말문이 막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.
  • “너 진짜…”
  • 여화연의 눈가가 살짝 붉어졌다.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한 글자 한 글자 똑똑히 들렸다.
  • “아빠, 난 내 결혼이 한평생 남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. 난 이미 3년이라는 시간을 이 이름만 혼인인 결혼에 낭비했어. 내 인생을 이렇게 헛된 일에 쓸 순 없어.”
  • 이때, 하인이 갑자기 조급한 말투로 그들을 불렀다.
  • “주인님, 사모님, 이 회장님께서 오셨습니다!”
  • 하지만 이미 늦었다. 가족들이 이 부름을 들었을 때 이효는 이미 문 앞에 서 있었다.
  • 여계천은 어안이 벙벙했다. 같은 시각, 여화연은 허리를 펴 몸을 뻗었다. 방금 한 말을 아버지가 들었나 궁금했다.
  • “이 도련님이 왜 왔지?”
  • 여계천은 먼저 궁리하다가 활짝 웃으며 마중하러 나갔다.
  • 이효의 눈길은 여화연을 보는 듯 마는 듯했다. 냉담한 기색을 띠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생소한 느낌이 아니었다.
  • “아버님, 너무 그러지 마세요. 사위로서 와보는 게 당연지사가 아니겠습니까?”
  • “그래, 그래, 그래.”
  • 여계천은 머리를 끄덕이며 이마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냈다.
  • 이건 이효가 자그마치 결혼 3년 만에, 아니, 평생 처음 여씨 집을 방문한 순간이었다.
  • 여계천은 급급히 이효를 자리에 앉혔다. 그러자 이효는 몸을 돌려 여화연을 쳐다봤다.
  • 깊은 눈망울은 마치 광대한 은하수처럼 보는 사람이 그 실상을 알 수 없게 하였다.
  •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.
  • 이 남자는 실로 사람을 깊이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