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제10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야

  • 강연연의 집에 이틀간 더 머물며 여화연은 마음의 준비를 끝내고 친정으로 돌아가 사실을 다 털어놨다.
  • 계속 피하는 것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. 만약 그녀가 단독으로 이혼하겠다고 선포한다면 여씨 가문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지금 이효가 제공한 이혼 합의서도 있으니 그녀를 문제로 삼지 않을 것이다.
  • 이혼 합의서를 몸에 지니고 있으니 마음이 든든했다.
  • 저녁 시간, 여씨 집은 시끌벅적했고 이따금 웃음소리도 들려왔다.
  • 홀로 캐리어를 끌고 나타난 여화연의 모습을 발견하고 여계천은 그녀의 뒤쪽을 흘끔 쳐다보고 물었다.
  • “너 갑자기 왜 왔어? 이 회장은?”
  • 이효가 여계천의 사위였지만 그는 줄곧 이효를 이 회장이라고 불렀다.
  • 다름이 아니라 여씨 그룹에 투자한 자금만으로도 그는 마음이 켕기기 때문이었다.
  • 하인이 여화연의 손에서 캐리어를 건네받고 구석에 놓으며 인사말을 건넸다.
  • “아가씨.”
  • “나도 몰라.”
  • 결혼 3년 동안 3번밖에 보지 못했고 심지어 연락처도 없었다. 그러니 그의 위치를 아는 게 이상하다.
  • “어찌 됐든 이 회장은 네 남편이야, 신경 써 주지도 못하냐?”
  • 여계천은 불만이 가득한 눈빛으로 딸을 쳐다봤다.
  • “예전엔 해외에서 유학해서 그렇다고 쳐, 근데 지금은 돌아왔으니까 남편이랑 좀 친해지고 가정도 좀 신경 써.”
  • 기관총처럼 쏘아붙이는 아버지 때문에 여화연은 해명할 기회도 없었다. 그나마 어머니가 딸을 아껴 그녀를 옆에 앉혔다.
  • “됐어, 딸이 오랜만에 왔는데 왜 그래?”
  • “얜 우리 딸이기 전에 이씨 가문의 며느리야. 여기부터 오면 이씨 가문이 뭐라고 생각하시겠어! 우리 여씨 가문을 어떻게 보겠느냔 말이야.”
  • 여씨 집안은 아직 이씨 가문이라는 큰 나무에 붙어있는 매미였다.
  • 어머니는 남편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그의 말에 동의했다.
  • “화연아, 지금은 옛날과 달라. 이제는 이 혼인을 잘 이어나가야 해.”
  • 여아진은 여화연의 옆으로 다가와 안타까운 듯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나는 대로 내뱉었다.
  • “언니, 형부는? 형부도 오는 거야?”
  • 언니랑 형부가 결혼한 지 3년이란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아진은 형부를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.
  • 학교에서 형부가 A시의 최고위치에 있는 남자라고 소문으로 들었었다. 많은 사람이 호시탐탐 형부의 기회를 노려보고 있었다. 그리하여 여아진은 언제 형부를 만날 기회가 있을지 궁금했다.
  • 여아진은 갓 18살 된 풋풋한 대학생이었고 한창 청춘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할 어린 여자애였다.
  • 모든 부모가 다 그런지 몰랐지만 여화연은 부모님이 여동생을 더 총애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. 그들은 동생한테 심한 말도 못 했고 뭐든 들어주고 동생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공주로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었다.
  • 그렇다고 부모님이 여화연한테 엄한 요구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동생과 비교하면 항상 뭔가가 부족한 듯했다.
  • 여계천은 불만이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.
  • “아진이 물어보고 있잖아, 귀먹었어?”
  • 여화연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.
  • “형부는 안 오실 거야.”
  • “아…왜 안 와?”
  • 여아진의 얼굴에는 실망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났다.
  • ‘왜긴 왜겠어…’
  • ‘애초에 아무런 관계도 없던 사람이었는데 뜬금없는 혼인 신고서 때문에 부부라는 사이가 되었지.’
  • 하지만 그녀는 혼자 생각할 뿐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.
  • “화연아, 너도 이제는 애가 아니야. 남편과 가정을 무조건 잘 돌봐야 해.”
  • 원우, 즉 어머니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.
  • 부모의 억압에 여화연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괴로울 뿐이었다.
  • 해외에서 유학하고 3년 만에 집에 돌아왔지만, 부모님과 여동생은 그녀를 보며 말끝마다 이효와 이씨 가문 얘기만 꺼냈다.
  • 명의상의 남편인 사람과 교류가 극히 적었지만, 그녀는 자기 생활 속에 이효가 완전히 침투되었다는 슬픈 사실을 발견했다.
  • 원래 적당한 기회를 찾아 가족에게 사실을 얘기하려고 했지만 지금 그녀는 더는 지체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.
  • 복잡한 문제는 명쾌하고 확실하게 처리하는 게 좋다.
  • 여화연은 바로 가방 속에서 이혼 합의서를 꺼내고 책상 위에 펼쳐놓았다.
  • “실망하게 해서 죄송하지만, 이 혼인을 오래 유지할 수 없어요. 이건 이효가 보낸 거예요.”